제가 나가는 투자 모임에 J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모임 단톡방의 스타였죠. “오늘 +18% 익절”, “이 종목 제가 며칠 전에 말씀드렸죠?” 인증샷이 올라올 때마다 다들 부러워했고, 몇몇은 J가 사는 종목을 따라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술자리에서 누군가 장난처럼 물었습니다. “J야, 근데 너 전체 계좌 수익률은 얼마야?” 잠깐의 정적 후에 J가 MTS를 열어 보여준 화면에는, 올해 누적 수익률 -23%가 찍혀 있었습니다.
J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인증한 익절은 전부 진짜였으니까요. 다만 보여주지 않은 것이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은 그날 J의 계좌에서 확인한 것들과, 우리가 매일 SNS와 커뮤니티에서 당하고 있는 ‘생존편향’이라는 착시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자랑 계좌와 진짜 계좌: 그날 본 것
J의 동의를 얻어(종목명은 가리는 조건으로) 단톡방에 올라왔던 인증과 전체 계좌를 나란히 놓고 정리해봤습니다.
| 구분 | 단톡방에 올라온 것 | 전체 계좌의 진실 |
|---|---|---|
| 매매 횟수 | 익절 인증 11건 | 상반기 총 매매 90여 건 |
| 손실 매매 | 언급 0건 | 손절·물림 다수, 개별 -30%대 종목 존재 |
| 미실현 손실 | 보이지 않음 | “언젠가 오를” 물린 종목이 계좌의 절반 |
| 수익률 기준 | 종목별 매매 단위 수익률 | 총 입금액 대비 누적 -23% |
포인트는 마지막 줄입니다. J조차 자기 계좌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익절의 기억은 선명하고 물린 종목은 ‘아직 안 판 것’으로 분류되니, 본인 머릿속에서도 생존편향이 작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남을 속이기 전에 자신부터 속고 있었던 거죠.
생존편향: 돌아온 폭격기만 보면 벌어지는 일
생존편향(Survivorship Bias)을 설명할 때 가장 유명한 사례는 2차대전 때의 폭격기 이야기입니다. 미군은 전장에서 돌아온 폭격기들의 총알 자국을 분석해, 자국이 많은 날개와 동체에 장갑을 보강하려 했습니다. 그때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왈드가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습니다. “총알 자국이 없는 곳(엔진)에 장갑을 대라. 그곳에 맞은 폭격기는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보는 데이터는 ‘살아 돌아온 것들’뿐이라는 통찰이죠.
투자 세계는 이 편향이 가장 심하게 작동하는 곳입니다. 유튜브에는 수익 난 사람의 계좌만 올라오고, 커뮤니티에는 익절 인증만 쌓이고, 리딩방 광고는 맞힌 종목만 보여줍니다. 잃은 사람은 조용히 시장을 떠나거나 침묵합니다. 그 결과 우리 눈에 보이는 표본은 ‘승자만 걸러진 세계’가 되고, 뇌는 이걸 근거로 “다들 버는데 나만 못 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벼락거지 불안과 FOMO의 원료가 바로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 특히 조심해야 할 유형
수익 인증을 근거로 유료 멤버십·리딩방 가입을 유도하는 계정은 생존편향을 ‘영업 도구’로 쓰는 경우입니다. 100개 방을 만들어 서로 다른 종목을 찍으면 그중 몇 개는 반드시 맞고, 맞은 방의 기록만 광고에 쓰면 됩니다. 인증은 진짜여도 표본은 조작인 셈입니다. 수익률 자랑에 ‘전체 기간·전체 계좌’ 기준이 없다면 일단 걸러야 합니다.
내 계좌를 왜곡 없이 보는 법: 3가지 숫자
남의 인증에 속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게, J처럼 내가 나에게 속지 않는 것입니다. 분기에 한 번, 아래 세 숫자만 계산해보시면 됩니다.
| 숫자 | 계산법 | 이 숫자가 잡아내는 착시 |
|---|---|---|
| ① 진짜 수익률 | (현재 평가금 − 총 입금액) ÷ 총 입금액 | 익절만 기억하고 물린 종목은 잊는 착시 |
| ② 승률 말고 손익비 | 평균 익절 금액 ÷ 평균 손절 금액 | “자주 벌지만 한 번에 크게 잃는” 구조 은폐 |
| ③ 지수 대비 성과 | 내 수익률 − 같은 기간 지수 ETF 수익률 | 상승장에서 실력과 시황을 혼동하는 착시 |
③번이 특히 아픕니다. 올해처럼 지수가 크게 움직인 해에는 “나 30% 벌었다”가 자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기간 지수 ETF만 사뒀어도 그 이상이었다면, 그 매매는 사실상 비용과 스트레스를 지불하고 시장을 하회한 것이니까요. J의 계좌도 정확히 이 케이스였습니다. 열심히 90번을 매매한 결과가,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 나빴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수익 인증 자체가 다 가짜라는 건가요?
A.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 진짜라서 위험합니다. 생존편향의 핵심은 거짓말이 아니라 ‘선택적 진실’입니다. 100번의 매매 중 진짜인 11번만 보여줘도,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승률 100%의 투자자가 만들어집니다. 인증의 진위보다 “보여주지 않은 매매가 몇 건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Q2. 그럼 남의 매매를 참고하는 건 무의미한가요?
A. 종목을 따라 사는 건 위험하지만, ‘과정’을 참고하는 건 유익합니다. 다만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전체 기간 수익률, 손실 매매까지 포함한 기록, 지수 대비 성과가 공개돼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그다음에 논리를 배우세요. 셋 중 하나도 공개하지 않는 사람의 종목만 받아 가는 건, 폭격기의 총알 자국만 보고 장갑을 대는 것과 같습니다.
Q3. 제 계좌 수익률이 지수보다 계속 낮으면 투자를 접어야 하나요?
A. 접는 게 아니라 ‘방식을 바꾸라’는 신호로 읽으시면 됩니다. 2~3년 연속 지수를 하회한다면 종목 선정과 잦은 매매가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뜻이니, 자산의 코어를 지수 ETF로 옮기고 개별 종목은 소액으로 제한하는 구조가 합리적입니다. 시장을 이기는 건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이고, 시장만큼 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후자를 기본값으로 두는 게 통계적으로 유리합니다.
마치며
그날 이후 우리 모임에는 새 규칙이 생겼습니다. 수익 인증을 올리려면 같은 달의 손실 매매도 함께 올릴 것. 재미있는 건, 규칙이 생기자 인증 자체가 확 줄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모임의 대화가 “뭐 샀어?”에서 “왜 샀어?”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의 피드에 오늘도 올라올 익절 인증들을 보며 조급해지신다면 기억하세요. 당신이 보고 있는 건 시장이 아니라, 돌아온 폭격기들뿐입니다.
유사투자자문업자(리딩방 등) 관련 피해 예방 정보는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사례는 개인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모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